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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동아일보] "세상과 닫힌 문, 투표로 열어요"
2020-04-13 17:33:12
관리자 조회수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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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중 특히 시청각장애인의 투표는 위대한 도전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장애인 재활 40여 년의 외길 인생을 걸어온 김종인 나사렛대 교수(62)의 말이다. ‘인간 재활학(Human Rehabilitation)’ 국내 1호 박사인 그는 장애인 단체 대표와 촉수화(손으로 만져 소통하는 수화) 전문가 등 30여 명이 참여한 한국헬렌켈러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8일 서울 강남세움장애인통합지원센터에서 김 교수와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78), 정형석 재단 상임대표(63)를 만났다. 장애인학교인 밀알학교, 장애인 자활을 돕는 굿윌스토어를 운영 중인 이 재단은 지난해 4월 시청각장애인을 돕는 ‘헬렌켈러센터’를 열었다. 이 센터는 총선 당일 시청각장애인에게 통역 서비스를 지원한다. 촉각수어 통역인이 신청자가 요청한 시간과 장소로 찾아가 투표 절차 설명, 투표장 내 동선 안내, 투표용지 설명 등 시청각장애인의 원활한 투표 참여를 돕는다.

“시청각장애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의 덧셈이 아닌 ‘곱셉의 장애’입니다. 장애가 있는 투표권자는 200여만 명, 이 중 시청각장애인은 1만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시청각장애는 신체장애 중 가장 중증에 속하고, 외부와 소통 자체가 거의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김 교수)

장애인 교육과 자활에 힘써온 홍 이사장은 장애인의 선거 참여를 ‘혁명적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20여 년 전 밀알학교가 문을 열 때만 해도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집에 가둬 키웠고, 주변에서는 개교를 반대했다”며 “장애인의 투표가 자연스러운 모습이 된다면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성숙한 변화를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시청각장애인은 소통이 어려워 선거와 관련한 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몇 분이 선거에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이른바 ‘헬렌켈러법’이 제정됐고 1970년 헬렌켈러국립센터가 설립돼 다양한 사회적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 시각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 법에 시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과 의사소통 지원, 전담기관 설치 등을 담은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들은 선거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BF(Barrier Free·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정책을 구체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는 장애인 명찰을 달고 있는 시청각장애인이 혼자서 이동할 때 도와주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정도로 사회적 기준이 높다”며 “헌신적인 설리번 선생이 없었다면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헬렌켈러센터는 지난달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모의 투표를 준비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됐다. 김 교수는 “시청각장애인의 투표 참여는 이제 걸음마 단계”라며 “이들의 참정권 실현이 곧 인권 보장”이라고 강조했다.

홍 이사장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밀알학교도 문을 닫고 있는 상태라 학생과 부모님들의 어려움이 크다”며 “앞으로 학교에서 적절한 교육을 통해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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